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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3일 45분 동안 씀

나는 시간과 생산성에 집착한다.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할 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할아버지 영향이 큰 듯하다. 그야말로 ‘생산성 달인’이셨던 할아버지. 추석 때 시골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리면 몇 시간 걸렸냐고 물으시는 건 기본이었고, 같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나서 하신 첫 말씀이 “음. 2시간 좀 넘게 했구나…”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께서는 늘 시계를 보셨던 거 같다.
대학 시절, 이모네서 할아버지랑 같이 함께 살 때였다. 성당서 돌아오다가 흰 봉지를 들고 은하 아파트 앞 택시 정류장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왜 여기 앉아 계세요?” 할아버지께선 바로 시계를 보셨다. “음. 수영장 갔다 오는 길이다. 이제 2분 정도 더 쉬었다 가면 된다.” “이건 뭐예요?” “문희 주려고. 지금 하나 먹을래?”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수영을 하셨던 할아버지께 걸어서 15분 좀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수영장은 한 번에 가기에는 버거웠던 것이다. 가는 길에 택시 정류장에서 한 번, 좀 더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한 번, 그렇게 꼬박 두 번을 쉬셨다. 수영장에서도 수영을 하기보다는 그냥 휘적휘적 걷다 오시는 거 같았는데도 빼먹는 날이 별로 없으셨다. 오시는 길에는 가끔 이모네 막둥이 사촌동생 먹으라고 중국식 호떡을 사오셨는데, 그 날도 호떡 봉지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2분 후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예전에 동네 사람들이 칸트가 산책을 나가는 걸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데, 할아버지를 보고 시계를 맞춰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과제를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무슨 일이지 의아해하면서 받았더니 “지윤이냐? 몇 시에 오냐?” “잘은 모르겠는데 그렇게 늦진 않을 거예요. 왜요?” “응. 발톱 좀 깎아달라고.” 산타클로스보다는 소담하셨지만 그때만 해도 배가 한 아름 나오셨던지라 발톱을 혼자 깎기는 무리셨던 거다. 조금 어이가 없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첫 손녀인 내게 그러셨듯, 나도 할아버지께 너그러웠기에 그날은 집에 좀 빨리 들어갔었다.
고 3때다. 갑자기 쓰러지신 할머니께서 중환자실에 계시다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 혼자 계시면 충격 먹으신다고 해서 내가 할아버지랑 같이 잤었다. 그때 할머니 처음 만나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다는 잘 기억 안 나지만 할머니가 참 고우셨다고 했던 말씀이랑, 할머니가 원하셨던 거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라고 하셨던 것만큼은 기억이 난다. 좀처럼 잠을 못 자다가 할아버지 코 고시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울다 지쳐 잤던 것도.
더 어릴 때도 기억난다. 세 살이었나 네 살이었나. 장소는 은하아파트 현관 마루바닥. 지윤아 할아버지 오셨다, 누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바로 쿵쾅쿵쾅 달려가 넓죽 큰 절을 했다. “다녀오셨어요.” 그때만 해도 까맣게 염색한 머리의 할아버지. 그러면 할아버지께서 나를 번쩍 들어올려주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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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오늘은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 맞는 두 번째 생신이고, 이 글은 45분 동안 썼어요. 저는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앞으로도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게요. 할아버지도 할머니랑 함께 좋은 모습으로 즐겁게 계시길 빌게요. 소리 지르거나 싸우지 마시고요. ^^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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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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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45분.
제빵기에서 식빵을 굽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10시 반쯤에 올린 모카빵이 방금 완성됐다. 김이 모락모락 난다. 오호라. 이건 뜨거울 때 먹어줘야지.

아, 역시 빵은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겉은 바삭바삭, 안은 촉촉하다. 설탕을 제법 넣었는데도 이스트가 다 먹어버려서인지 그리 달지도 않다.

오후 느지막히 남편군이 실망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돌아왔다. 기운 나게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해도 그냥 ‘아무거나’란다. 일단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어제 돈까스 만들고 남은 계란을 재활용해 계란말이를 했다. TH가 사랑해 마지 않는 마법의 소스, 라면 스프도 김치찌개에 넣었다. 그래서인지 맛있게 먹는다. 그래도 좀처럼 표정이 밝아지지 않는다.

몇 시간이 지났으려나. 또다시 빨간 의자에 붙박이가 되어 아이패드를 잡고 이어폰을 끼고 낄낄거리고 있다. 오늘만큼은 예능을 내리 보는데도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게라도 웃으니 다행이다. 나도 남편도 유학생활이 쉽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연구실 들어가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빵 해줄게. 무슨 빵 먹고 싶어?” “모카빵.” …제빵기 살 때 같이 받은 두꺼운 요리책에도 모카빵은 없다.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다. 계량컵 기준이 아니라 무게 단위로 적혀 있다. 저울을 꺼낸다. 그램으로 적혀 있는 건 그대로 넣고 나머지는 그냥 감으로 때려넣는다. ‘1큰 술’이 밥 숟가락(=얼추 티스푼)인지 테이블스푼인지 몰라서다. 반죽양이 너무 적어보인다. 재료를 다시 하나씩 빵틀에 붓는다.

그게 벌써 4시간 전이다. 예열, 반죽, 발효, 2차 반죽, 굽기. 2배를 했는데도 적어 보였던 재료들이 반죽과 발효를 거치고 나니 두둥실 부풀어올랐다. 뒤늦게 넣어준 피칸 조각도 곱게 알알이 박혀 있다.

삐삐- 제빵기 알람이 울리자마자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오늘 (예능 없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호호 불어가며 둘이 이 새벽에 맛있게 먹었다. 다음 주에는 빵 없이도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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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 단상

가끔 생각한다.

찾기와 바꾸기 기능이 없던 시대에, 아니 컴퓨터가 없던 시대에, 또 구글느님이 없던 시대에 대체 번역이란 걸 어떻게 했을까… 정말 존경합니다. 꾸벅.

가끔 라디오 피디 선배들이 입에 거품을 물며 릴테입 얘기하면서 받침도 가위로 잘라냈다고 자랑하곤 할 때 감탄(하는 척)했는데, 미안하지만 이건 아예 차원이 다른 얘기다. (릴테입이나 디지털이나 글자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중엔 대충 파형 보고 아… 이 부분이겠구나 하는 감 정도는 생기더라만)

물론 그런 기술이 생기니 너도나도 ‘쉽게’ 달려들고 클레임도 많아지고 그러면서 몸값도 떨어지는 거겠지. (음. 긍정적으로 출발했으나 뭔가 씁쓸하구만.)

하긴 새벽 세 시, 긍정적이기에 좀 힘든 시각이다. 나는 분명 LA에 있는 거 같은데 몸은 여전히 한국 시간에 맞춰있다…는 건 뻥이고, 미친듯이 몰려오는 졸음 꾹 참으며 일하는 중이다.

그래도 오늘 다사다난했던 발표 하나 끝냈다. (눈물 좀 닦고…) 야호. 아 이번 학기도 거의 끝나간다. 야야호.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글을 올리자고 했는데 무심했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블로그를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다가 더 글을 올리지 않았다. 정말 고민이 팔잔가. 후후. 에구구구. 다시 일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