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둑이라는 장조림 이 자식, 밥만 훔치는 게 아니었다. 금쪽같은 시간도 깜쪽같이 훔쳐간다. 주부 경력 5년 만에 장조림은 왜 큰 맘 먹고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장장 3시간을 매달려서 한 게 바로 사진 속 장조림이다. 국물에 밥 말아먹는 게 좋아서 국물을 좀 넉넉하게 잡고 한 게 화근이었다. 졸이는 데 엄청 오래 걸렸다. 게다가 국간장 비율을 높였더니 아무래도 색이 좀 덜 까맣다. 흑. 윤기 좔좔 흐르는 검은 장조림을 기대했는데… 삶은 계란도 넣었다가 터져서 노른자도 좀 둥둥 떠다닌다. 사진은 거시기하지만 맛은 뭐 그럭저럭 괜찮다. 고깃국물인데 맛이 없어봤자지… 사람도 그렇지만 음식은 외모보다 속이 중요하다(고 굳게 믿고 싶다).
여기저기서 레시피를 많이 찾아봤는데 결국 중요한 건 1.고기 핏물 빼기, 2. 육수 내기, 3. 간장 넣고 졸이기였다. 육수는 레시피마다 다 달랐다. 나는야 제대로 요리하는 뇨자니까 육수도 맘 먹고 냈다. 고기는 ‘장조림용’이라고 써 있는 걸 한인마트에서 샀다. 고기 누린내를 잡는 데 의외로 커피가 좋대서 커피 알갱이를 살짝 탄 물에 30분 이상 담가놨다. 끓일 때도 커피는 조금 넣어줬다. 핏물을 오래 빼서 그런지 거품이 덜 일었다.
육수를 우릴 때는 물, 청주, 찬 물에 담가놨던 다시마와, 파뿌리, 대파, 양파, 생강청 만들어 놨던 생강 건더기를 넣었다. 설탕도 조금 넣는다고 하던데 (우리 엄마도 말씀하셨지. 짠 거에는 단 거 조금 단 거에는 짠 거 조금 넣으면 맛이 살아난다고.) 생강청 국물을 조금 넣는 것으로 갈음했다. 언젠가 본 요리책에서 다시마는 끓이면 지저분한 거품이 난다고 했으므로 찬 물에 오래 담가놨던 걸 썼고,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육수 끓일 때 살짝 끓이다가 곧 건져냈다. 제일 중요한 쇠고기 빼고 사실 나머지 부재료도 레시피마다 각양각색이었다. 결국 자기 마음이다. 나는 고기만 먹지 말자 싶어서 부재료로 삶은 계란, 꽈리 고추, 새송이 버섯을 선택했다. 통마늘도 넣고 싶었는데… 없어서 포기했다.
처음부터 간장 국물에 고기를 넣고 끓이면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고기에 양념이 잘 안 밴다고 해서 육수를 내고 고기는 건져서 한 김 식혔다. 고기를 손으로 찢다가 아무래도 잘 안 찢어져서 결국 칼로 썰었다. 왜 이리 질길까 그때부터 걱정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결과물도 질기다. 고기를 식히는 동안에 간장 국물에 나머지 부재료를 넣고 끓였다. 부재료를 20~30분 졸이고 고기를 넣고 한 10~15분 더 끓이라는데 나는 좀 더 끓였다. 그래도 고기가 질기다. (흠. 그래’도’가 아니라 그래’서’ 고기가 질긴 건가?-_-)
동생이 좋아해서 장조림 해달라고 엄마를 조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왜 엄마가 그렇게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지 잘 알겠다. 장조림은 시간 도둑이었다. 그래도 해놓고 나니 부자 된 기분이다. 확실히 남편 도시락을 싸게 되면서 요리를 (주로 밑반찬류를) 많이 하게 되는데, 힘들지만 보람은 있다. 다만 너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게 좀 슬플 뿐. 여러분, 장조림은 주부의 사랑입니다. 잊지 마세요.
덧 1. 실은 어깨와 목이 매우 아픈데도(!) 언제나처럼 숙제와 번역일이 많은데도(!) 급한 불만 꺼놓고 큰맘 먹고 한 거다. 며칠 전에 사놓은 고기가 냉장고에서 검게 변하고 있어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덧 2. 초딩 입맛 우리 신랑, 의외로 나물은 잘 먹는다. 그래서 도시락으로 나물을 주로 싸줘도 별 말 안 하고 먹어서 기뻤다. 그런데 얼마 전 장 보러 갔을 때 소시지를 잡고 놓질 않더라. 몸에 안 좋다고 웬만하면 먹지 말라고 해도 그런 편견(!)을 버리라며 단백질을 보충한답시고 굳이 소시지를 샀다. 차라리 제육볶음이나 장조림을 싸주겠다고 달래 보았지만 무리였다. 하지만 괜찮다. 남편군은 요리를 좀처럼 안 하니까. 그리고 도시락은 내가 싸니까. 소시지는 어짜피 나 없을 때 실컷 먹을 테니 나는 절대 싸주지 않겠어. 움화화화홧. 장조림으로 퉁쳐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