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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ion and…

Today Sia graduated from her beloved Bluebird Montessori Preschool. Ted and I went to celebrate the occasion along with the other parents.

Sia’s last day of preschool

The kiddos performed today. There was a ballet showcase of two songs–“Part of Your World” from The Little Mermaid, and “The Entertainer” from The Sting. I knew Sia was very flexible–she used to nap in such weird poses–and loved the ballet classes, but I didn’t think she would dance that well nor enjoy it that much. I was very proud of her.

Sia right before the dance

Then all the children performed a couple of songs. Arirang, a Korean traditional folk song, was one of them. The tune and the lyrics are a bit sad, but the kiddos made it sound all cheerful. 🙂

Their performance reminded me of the 2019 Christmas Talent Show, when no one wore or even thought of masks. These were the good old days. Yet I am grateful that no one got COVID-19–a very special thanks to the director and the teachers.

Boohoo, I had sent a much prettier dress for her to wear, but oh well…

I am writing this post at the airport, waiting for our flight to Philadelphia! I will be away for a while. East Coast, here we come! Yay!

Sia got a suitcase from her aunt for her birthday–she’s loving it!

I am not sure whether I will write any posts during the trip, so so long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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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가리랑

“아리랑 가리랑 가라리요~”

내일 시아 유치원 졸업식이 있다. 그때 아리랑을 부른다고 집에서도 열심히 연습한다. 어랏? 가사가 조금 다르다. ㅇ 받침을 연음해서 ㄱ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는 건가? 몇 번을 고쳐줬는데도 자기 귀에는 그렇게 들리는지 계속 “가리랑 가리랑”이라 부른다. 내일은 어떻게 부를지 기대된다. 첫 크리스마스 발표회에서는 하와이 노래를 불렀다. 계속 가사를 틀리게 부르는 시아를 보다 못한 옆 친구가 공연 중에 “시아야 그거 아니야.”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친구가 있을까? 귀요미 꼬맹이들. 친구들 이름을 다 외우라고 시켰던 시아 덕분에 요 근래 새로 들어온 친구들 외에는 같은 반 아이들의 한국 이름 미국 이름을 다 알게 됐다. 그 친구들도 이제 부모들이 눈에 익은지 나를 발견하면 “시아야, 시아 엄마 왔어!”라고 말해준다.

이사 온 다음날인 2019년 7월 1일부터 파랑새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달 못 갔던 걸 빼곤 꼬박 2년을 별 탈 없이 잘 다녔다. 감개무량하다. 요새는 킨더 대비로 시아 반에서도 영어만 써서 영어를 섞어 쓰긴 하지만, 한국인 원장님이 하시는 몬테소리 유치원에 다닌 덕에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 성심성의껏 아이들을 돌봐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시아도 친구들도 많은 걸 배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도 마음 편히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이제 킨더에 가면 학교에 있는 시간이 확 줄어들 텐데… (8시 15분부터 11시 반이라니… 돌아서면 픽업 시간이군요. 학교에 야도하고 돌아오는 건가요 ㅠㅠ) 시아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게 (조금) 기대도 되고 (많이)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 (하루 중 픽업할 때와 재우고 난 직후가 사랑이 가장 높이 차오르는 시간… 나만 그런가요?) 자유여, 안녕.

요 며칠, 병든 닭처럼 낮에 자꾸 잠을 잔다. 물론 늦게 자는 게 제일 문제긴 하다. 게다가 꿈도 많이 꾸고, 시아가 자꾸 새벽에 넘어와서 잠을 설친다. 피로가 누적된 건지, 아니면 여행 대비로 미리 자두는 건지, 픽픽 쓰러져 잠든다. 오늘이야말로 짐도 싸고 집도 치워야 되서 기력이 딸려 누워는 있어도 안 자려고 버텼는데 (쓰고 나니 얼마나 헛된 바람이었는지 알겠네요. 반성합니다. 잘 생각이 없었으면 눕지를 말았어야 하죠. 암요.)… 급기야 점심을 먹고 잠들었다.

잠잠잠을 자면서 엉망진창인 집 정리와 밀린 일들이 자꾸 더 밀린다. 아,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하루하루 충실히 보내야 한다는 시간에 대한 강박을 조금 내려놓기로 한다. 시아 임신했을 때, 뭘 준비해야 하냐고 묻는 내게 누워 있을 수 있을 때 누워 있으라고, 잠을 많이 자라고 조언해주던 사람들이 뜬금없이 생각난다. 유치원 졸업하면 또 언제 이렇게 편히 낮잠을 자겠나. 여행 다녀와서 지금 유치원 여름 프로그램에 3주 정도를 더 보내기로 했으니 아직 약간의 유예 기간은 있겠지. 일단 짐이나 싸야지. 내일 떠날 준비만 하면 된다.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 할 일은 20일 후로…?! 여행 다녀온 유지윤이 오늘의 유지윤에게 불꽃 싸다구를 날리고 싶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일단 앞으로 20일 동안 기거할 곳은 다 마련됐고 투어랑 박물관도 몇 군데 예약했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 가서 부딪치는 걸로!

그렇다. 내일, 아리랑을 뒤로 하고 시아는 유치원을 졸업할 거고, 우리는 2년만에 비행기를 타고 먼 여행을 떠난다. 필라델피아, 워싱턴 DC, 예일대를 거쳐 보스턴까지. 시아와 남편과 24시간 붙어 있을 20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5년 동안 시아와 아예 다른 곳에서 떨어져 잔 적이 단 하루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 필라델피아로 만나러 갈 친구가 엘에이에로 출장을 왔던 때다. 퇴근한 친구와 근처에서 놀다가 호텔에서 자고 돌아왔던 금쪽 같던 (내 새끼 아니고) 하루. 기대된다. 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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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행복

예쁘죠? ㅎㅎ

시아 생일을 맞아 시아 부모 보은 행사를 셀프로 했다. 캬캬캬. 시작은 시아 스쿠터였다. 시아는 스쿠터가 있긴 하다. 엘에이 살 때 내 친구가 주고 간 건데, 그때도 별로 좋은 건 아니라고 했었는데 약간 흔들리는 느낌이 있어서 이번 생일을 맞아 업그레이드해주었다. 곧 입학할 시아 학교가 걸어서 편도로 30분인데, 스쿠터로 가면 조금 더 즐겁게 갈까 싶어서… 그렇지 않아도 공원 나가서 같이 스쿠터 타도 좋을 것 같아 나와 남편 스쿠터도 (할인하길래!) 이번 기회에 샀다.

안 그래도 Razor A5 Lux가 가격대비 좋다는 제보를 듣고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Razor A5 Lux 스쿠터가 아리조나 아이스티와 콜라보한 스쿠터가 있었다. 아니! 너무 예쁘잖아요? 심지어 할인행사 중이었다. 타겟에서 $100불 이상 사면 $25불 할인하는 행사도 있었다. (참고로 남편 꺼는 스리라차 핫소스 버전을 사주고 싶었는데 남편이 거부…)

오늘 도착하자마자 바로 개시했다. 사실 스쿠터를 처음 타본 건데… 생각보다 균형을 잘 잡아야 되겠더라. 조금 무서웠다. 이번에 시아 스쿠터를 살 때 두 바퀴짜리를 살까 세 바퀴짜리를 살까 좀 고민했는데 세 바퀴짜리 사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시아 겁 내고 별로 잘 못 탔을 듯.

씽씽~ 달려야지. 세 식구 다 출동!은 동부 여행 다녀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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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더 더 사랑할게

“시아는 감사한 일이 뭐야?”

“엄마 낮잠 잔 거. 엄마가 낮잠 자서 에너지가 채워졌잖아.”

아우 야.

바로 직전에 내 배로 돌진해서 아프다고 좀 비키라고 했던 게 너무 미안하잖아.

생일이라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시아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미안해.”

“왜?”

“왜냐니. 엄마 배 너무 아파서 시아가 나왔잖아.”

“응?”

“그리고 시아 키우는 거 너무 힘들잖아.”

“키우는 게 힘들잖아”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길래 오늘은 정색을 하고 말해줬다.

“맞아. 시아야. 시아 키우는 거 솔직히 쉽진 않아. 힘들어. 그렇지만 엄마는 시아가 있어서 정말 정말 너무 좋아. 힘들어도 시아가 있어서 기꺼이 힘들 수 있어. 엄마는 시아를 엄청 엄청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엄마가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

하루에도 우리 둘은 몇 번이고 말한다.

“Sia Lee, I love you oh so much!”

“Jiyoon Yoo, I love you more! I love you a thousand million hundred thousand more.”

요 며칠 친구들이랑 놀 때 자잘하게 다투는 걸 보고 조금 걱정했다. 버럭 화를 내고 소리지르는 건 어디서 배운 걸까. 시아가 소리질러서 무섭다고 울먹이는 친구 편을 들어주니까 자기 편을 안 들어주고 다른 친구 편을 들어준다고 더 화를 내며 울었다. 난감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조심스레 타일렀다. 엄마는 시아가 웃을 때나 울 때나 화낼 때나 징징거릴 때나 언제나 시아를 사랑하고 언제나 시아 편이지만, 그렇다고 시아가 언제나 다 맞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시아를 언제나 편들어줄 수는 없다고. 다른 친구 엄마 아빠가 무조건 다른 친구만 편들어주면 시아도 너무 슬플 거 아니냐고. 시아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도 소중하고 귀하다고. 시아가 실수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다고. 시아가 생각하기에 다른 친구가 시아에게 일부러 잘못한 것 같아도 실수일 수도 있는 거라고. 시아가 모든 걸 다 알고 시아 생각이 다 맞을 수는 없다고. 그렇다고 화를 내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다만 다른 사람들이 실수한 걸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조금 더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조용히 듣더니 알겠노라고 했다.

너무 입바른 소리만 한 건 아닌가 또 후회가 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여러 번 말해도 아무리 꼭 안아줘도 자기 편을 안 들어주는 것 같고 억울하고 공평하지 못하다고 외치는 걸 보면 계속 뭔가 불안한가 보다. 더 더 많이 사랑해 줘야지. 꼭 안아줘야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계속 다른 친구들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도 막상 만나서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세상 배려심 많은 오지라퍼지만 입바른 소리도 곧잘 하는 우리 시아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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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기

어제 Schitt’s Creek 메이킹 필름을 마지막으로 봤다. 눈을 잡아끄는 장면이 있었다. 극중 인물들이 둘러앉아 팬레터를 읽고 있었다. 퀴어 자식을 둔 엄마들의 모임에서 몇 천 명이 함께 서명한 편지였다. 극중 고난과 역경과 시련이 없는,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게이 커플 로맨스를 보면서 재미있으면서도 용기를 주는, 가르치려 들거나 후지지 않은 이야기를 너무나도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내 줘서 너무 고맙다고, 큰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주연 겸 작가 겸 제작자인 다니엘 레비(극중에서 바이섹슈얼 아들)가 엉엉 울고 나머지 주인공들도 눈물을 흘렸다. 나도 함께 울었다.

대학 때, 절친인 과친구를 ‘달링’이라고 불렀었다. 내딴에는 ‘진한 우정’을 ‘유머러스하게’ 일컫는 말이었다. 그땐 생각을 못 했다. (이성애자인) 내가 재미있자고, 이성애자인 내 동성 친구를 그렇게 부르는 게 우리 과에 있었을 LGBTQA+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 친구가 우리 그러지 말자고 할 때, ‘앗차’ 싶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이러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방학 때였나, 졸업을 하고 나서였나.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세미나를 잠시 했었다. 함께 했던 멤버들 중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강단이 있던 L.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서로에게 반말을 하고 언니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럼에도 동갑내기 친구와 조금 더 가까워졌었다. 취향이 겹치는 부분이 더 많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가 레즈비언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면서, 과거의 내 행동이 더 후회가 됐다.

라디오 피디가 되고 정식으로 배치된 첫 프로그램은 문화 프로그램이었다. 문화 체험을 PD가 대신 해준다는 컨셉으로 취재를 다녔다. 사심을 듬뿍 담아 ‘언니네’ 캠프로 취재를 갔다.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많았다. 당연히 방송국(그것도 KBS)에서 취재하러 온 나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음성으로, 단독으로 취재를 갔으니 조금 경계를 덜 했으리라. 2박 3일 동안, 취재를 잊다시피하고 즐겁게 캠프를 즐기는 나를 보면서 마음을 더 열어줘서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내줬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이성애자들이 거리낌없이 마음을 나누었던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진심으로 함께하고자 했던 캠프였다. 약속대로 본인이 밝히고 싶지 않아 했던 속 깊은 이야기는 녹음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바쁘거나 언제나 증명해야만 하는, 힘들게 커밍아웃한 가족에게 버림받았던 이야기나 어렵게 말을 꺼낸 친구에게 쿨하게 인정받았던 이야기,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을 쏟아내던 사람들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한다. 그 안전한 공간이 주던 믿음과 신뢰의 따뜻함도.

오늘 모처럼 외출을 해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무지개 깃발을 달고 경적을 울리며 퍼레이드 하는 차들이 몇 지나갔다. 응원의 마음을 슬며시 보탰다.

멋진 후배/친구 츄를 비롯해 몇몇 페친의 담벼락에서 닷페이스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본다. 닷페이스는 안 그래도 멋진데, 프라이드 퍼레이드 슬로건 역시 기깔나게 멋있다.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라니!! 구비구비 풀어내고도 남을 고난의 역사나 투쟁을 다짐하는 게 아니라 길을 열지,라고 자신있게 외치는 그 위풍당당함. 멋지다. 나도 응원하며 함께하련다.

#우리는어디서든길을열지 #온라인퀴퍼2021 #닷페이스 참여는 여기👉 pride.dotface.kr 하늘색 록스타 머리에 눈가에 번개 모양으로 메이크업을 한 캐릭터가 우리는어디서든길을열지 라는 글씨가 쓰인 깃발을 들고 사랑가득한 표정으로 바나나 보드를 타고 초록빛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빨간색 브이넥 나시에 초록색 그물 스타킹를 입고있으며 등 뒤에는 무지개 망토를 두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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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of me

“Only parts of us will ever touch only parts of others.”
~ Marilyn Monroe

Whenever I think of this quote, I think of the song “All I Ask of You.” the last line Raoul and Christine sing together is “Love me—that’s all I ask of you.” People yearn love. That may be all we ever ask.

I don’t deny that Marilyn is right, however sad that truth is. I still think that the parts of us that touch parts of others matter, however small those parts may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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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오늘도 느림2

22일 핸드폰을 받아왔다고 전편에 말했는데, 그날 4시간 정도 걸려서 새 핸드폰을 세팅했다. 그러고 나니 녹초?! 어제는 뭘 했냐고? 보험 문의를 했다. 새 폰인데 벌써 보험처리…는 아니고, 보험이 제대로 세팅이 되지 않아서 문의(채팅, 메일)를 했다. 왜 전화로 안 했냐고? 안 받으니까요 ㅠㅠ

오늘은 버라이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스트코에서 기기 반납은 해주지 않는다고 버라이즌 앱에서 배송 키트를 받아서 반납을 하라고 해서 앱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뿔싸. 로그인을 다시 하란다. (역시 영혼까지 복사된다는 기기 이전은… 로그인 정보까진 이어주지 않았어… 흥. 보안 위험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역시 야악간 불편하긴 한… 편의인가 보안인가… 흠.)

FaceId에 익숙해져서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다. 기기를 바꾸니 다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는데… 계속 오류가 났다. 그 수많은 비밀번호 중 뭐냐고요. ㅠㅠ 아, 혹시 내 회선 계정이 아니라 전체 계정 비밀번호로 해야 되나? 그러다가 5번 입력 기회를 다 써버렸다. 비밀번호 재설정을 하란다.

우편번호(미국은 개인 정보 인증을 우편번호로 많이 한다)를 입력하라고 하는데 그것도 틀렸다. 알고 보니 이것도 패밀리 플랜으로 묶여 있어서 주계정인 사촌동생의 남편 계정 정보를 써야 했다. 비밀번호 재설정도 쉽지 않다.

전화를 해서 비번을 다시 설정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떠서 전화를 했다. 30분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러고 받은 사람이 안내를 시작해줬다. 그래서 5분만에 해결됐다…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지.

결론적으로는… 안 됐다. 앱에서 완전히 로그아웃이 안 되서 그런가 하고 다시 로그아웃을 했는데도 비번 변경 승인을 하라고 해서 승인하면 원래 세션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잠깐 뜨면서 사라지고 비번을 설정하라, 전화를 걸어서 해결하라는 걸 무한반복했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도 찍는 것 같아.”라고 농담을 건넸지만, 사실 내 마음은 이미 부글부글. 그래도 상담원 잘못도 아닌데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앱이 아니라 웹브라우저 상에서 해보라고 해서 하는데도 똑같다. 무한반복.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꼬리에 꼬리를 무네.

로그인 자체고 문제지만 기기반납은 어떻게 하나. 계정이 잠금되었으니 24시간을 기다려보고 풀어보고 신청하란다. 음… 그래. 내친 김에 물어본다.

“기기반납은 꼭 우편으로만 해야 하나요. 이제 곧 여행을 가서 배송 키트를 받고 기기를 보내기가 어려워요.”

“언제 여행을 가는데요? 배송키트는 신청하면 영업일 기준 3~4일은 걸릴 거예요.”

“간당간당하네요. 6/30 밤에 떠나거든요. 그러고 14일 이내에 기기 반납하라고 했는데 저는 한참 후에 돌아오거든요.”

“배송키트는 받을 주소를 바꿀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어때요?”

“음… 문제는 제가 여행 가서 한 곳에만 있진 않고 돌아다녀서요. 어디 점포로 반납하면 안 될까요?”

“코스트코에서 샀다고 했죠? 코스트코 영업점에서 기기반납을 처리할 텐데…”

“코스트코 직원은 분명히 자기네는 취급을 안 한다고 버라이즌에 가라고 했어요. 버라이즌 직영점에서 기기반납을 하는 데가 한 군데도 없나요?”

“네. 모두 배송키트로 해요. 코스트코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니 이상하네요. 코스트코 직영점에서 반납처리하는 걸 봤거든요.”

“……네. 친절하게 응대해줘서 고마워요.”

코스트코에 전화를 한다. 통신사 부스 번호를 알아낸다. 전화를 하니 나를 응대해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는다. 버라이즌에서 기기반납을 코스트코 통해서 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하니 자기가 1년 동안 근무하면서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단다. 버라이즌에 가서 해야 된다고 한다. 연결이 된 김에 내가 기기를 샀던 다른 직원이 올스테이트 보험 입력을 뭘 잘못했는지 보험이 함께 산 어답터를 보장하는 걸로 나온다고 불만을 말했더니 도리어 성을 낸다. 걘 잘못한 게 없다고. 올스테이트 쪽 오류일 거라고. 자기네 쪽에서는 그걸 설정할 수 자체가 없다고. …아니 그럼 내가 했나요. 나는 그 입력 단말기를 보지도 못했는데요. -_-;;;말해봐야 내 입만 아픈데 왜 그랬을까. 뭔가 하고픈 말이 부글부글 끓지만 삼킨다. 알았다고 하고 끊는다. 하긴 이 사람이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별 거 아닌 사소한 민원처리 (실패)로 벌써 오늘 버린 시간이 세 시간이다. 오늘은 이만 포기할까 싶었지만… 기왕 버린 시간… 오늘 안에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버렸다. 헛걸음하기 싫어 근처 버라이즌 지점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해본다. …그냥 안내멘트로 넘어간다. 휴. 오래 걸리는 곳이 아니니 일단 가보기로 한다.

지점에 가서 직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바.로. 기기 반납을 받아준다. 키트고 뭐고 다 없다. 기기를 켜서 켜지는지 확인하고 시리얼 번호만 확인하고 끝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나는 왜-_- 세 시간 동안 고생한 거지. 애초에 버라이즌 지점에서 기기 반납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왜 했지? 이러저런 상담을 했다고 그간 일을 간략하게 말했더니 안심하라며 영수증도 프린트해준다. 기기 로그인도 안 된다고 24시간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니 그것도 자기네 태블릿 통해 다시 설정하게 해줬다. “와. 진짜 덕분에 살았어요. 너무 고마워요.”라는 말을 남기고 나온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점심 이후 시간을 다 날리고 오늘 낭독도 결국 못 했지만… 괜찮다. 묵은 때 벗겨낸 기분이다. 와. 이렇게 상쾌하게 끝나다니. 미국답지 않은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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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rth and The Name 2

My father-in-law wanted us to have a boy. There. I said it. To be fair, he hasn’t said anything to us. I just heard from someone else that he “wasn’t as happy” when he found out that we were having a girl.

Yes, boys are still preferred to girls in Korea. Only a man can hold the ancestral rites although it is usually the women who prepare all the food. This long-held belief related to the Korean traditional ancestral rites has not disappeared just yet. Surprisingly, quite a few people even in my generation, women included, still share that belief.

The ob/gyn had initially told us that we might be having a boy. He must have been fooled by the blurred sonogram. When I first heard, I wasn’t too thrilled about that. I knew that this baby would likely be our only child, and I was somewhat disappointed that I was having a boy. I had a strange feeling that I shouldn’t let other people—i.e. my in-laws—know about the sex of the child just yet, but Hubby had told my father-in-law. I later heard that he was so excited to have another grandson, especially from his son.

I felt exactly the opposite. They say that a daughter is a mom’s best friend. This may be due to our individual differences and unrelated to our gender, but I seem to be much closer to my parents than Hubby is to his. It’s not like I desperately needed a friend, but I wanted to have a child with whom I could share and relate more. That isn’t to say that a son would have been a bad thing, but still, I would have liked a daughter better.

Imagine my pleasant surprise a couple of weeks later, after my test results came out. It was on a weekend night, and we were having dimsum with friends. I got a call from the clinic saying that they had mistaken and that we were having a girl. I jumped up and down and let out a yelp at the news. I was elated.

I was worried how my father-in-law would react. His exact words after receiving the news was “Oh, congratulations. A princess is great, too.” That “too” part spoke volumes, but I let it go. I decided to cut him some slack.

Now, the naming of the child could have become an issue. In Korean society, the father’s family, especially the father of the father, tend to get a lot of say in naming the new-born child. I for one didn’t want that, but I knew that my father-in-law wanted to name the baby. It was a delicate matter, and Hubby, despite his many good qualities, is not known for his diplomatic maneuvers.

There were other complicated family issues at the time, and I did not know how my father-in-law would react if he didn’t get to name the baby. The father and son (Hubby) talked about the candidates for the name. I tried to stay out of their conversation as much as possible, which was not easy because my father-in-law called me often, when Hubby didn’t pick up his phone. (Hubby is not the most reachable guy in the world.)

Luckily, we had decided on the middle name days before, and we had my father-in-law’s blessing. The name was Stella, like the nickname of Mother Mary. We had paid a visit in May to the Mission Maria Stella Maris Catholic Church, and we decided that it would be a good Christian name for Sia, should she decide to stay in the Catholic faith. My father-in-law liked that, being a devout Catholic himself.

So back to the birth. My water broke one week before the expected due date, and we weren’t fully decided. We rushed to the hospital, and I gave birth to Star (Sia’s baby name or womb name as Koreans call it) after 9 hours of labor. I was exhausted and couldn’t think straight. I don’t quite remember whether it was the same day or the next, but people came to give Sia the vaccine. They told us that they needed to log that into the state system, so they needed a name. Boom! OK. In less than thirty seconds, the newborn became Sia.

My father-in-law didn’t make a big thing out of it. Although he tried not to show it, he still seemed a little disappointed. So we let him choose the Chinese characters that go with Sia. The characters he chose was “For the first time, beautiful.” At least that is how I remember it, although I am not a hundred percent sure.

So there it is. I now love the name Sia, and for what is worth, Sia does too. Sometimes I call her “Byul-i” as in Star in Korean, but she hates it. She is not too fond of Stella either. So Sia she is, and Sia she will re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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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오늘도 느림

미국살이 이제 햇수로 9년차다. 헤아려보고 놀랐다. 2013년 12월 말에 왔으니 8년차에 더 가깝긴 하지만, 어쨌든 9년이라니. 이제 꽤 오래됐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의 일 처리 속도에 적응이 안 될 때가 많다. 아아. 한국의 행정은 최고!

그러니까 사실 이건 자랑으로 시작해야 하는 포스팅이었다. 왜냐? 아이폰 12 프로를 오늘 받아 왔으니까. 그.런.데. 옛날 같으면 새 폰이 생겨서 좋다고 펄쩍펄쩍 뛰었을 텐데 오늘은 조금 시큰둥하다. (시큰둥…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물론 미리 2시간 걸려 골라 미리 주문한 케이스를 끼고 액정 보호 필름도 곱게 잘 붙였다. 나 이제 액정 보호 필름 붙이는 데도 전문가 뺨 치는 수준이다.)

지난 주 수요일에 버라이즌(미국의 통신회사. 우리로 치면 SK정도 되려나?) 이벤트 막차를 탔다. 아이폰 10을 반납하고 특정 요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흔한 수법이긴 했지만, 그래도 $700불이나 돌려준다는데 이쯤 되니 안 바꿀 이유가 없었다. 아이폰 10 아직 멀쩡하다고 새 케이스로 기분 전환한 게 벌써 몇 달 전 일이다. 사실 아직도 쓸 만하긴 하다. 배터리 문제만 빼면. 아우 배터리는 좀… 심하다.

오전에 케이스와 보호필름을 아마존에서 주문하고 버라이즌 고객상담을 했다. 전화로 하려니 너무 오래 기다려서 채팅으로 이것저것 물어봤다. 일단 이 이벤트는 한동안 계속 된다고 하고, 코스트코 내 점포는 해당이 안 되고 버라이즌 직영점에서만 하는 행사라는 답을 들었다. 채팅을 하다 보니 버라이즌을 가기에는 좀 늦기도 해서 그냥 안심하고 코스트코로 장을 보러 갔다. 그런데 코스트코 내 통신사 합동 매장에 떡하니 $700불 할인은 6/16까지 라는 안내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읭?? 혹시 몰라 일단 문의를 시작했다. 여기서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단다. 행사가 내일까지라고 하니까 일단 구매를 하고 요금제를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이것저것 문의를 하는데 대답을 제법 잘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코스트코가 버라이즌보다도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하긴 자기 실적인데 설령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말했겠지?) 여튼 기왕 바꾸기로 마음 먹은 거 빨리 해야지 싶어 바꾸겠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내가 원하는 색과 용량은 재고가 없어서 주문을 해야 된다고 하더니 다시 한 번 알아보겠다고 재고를 알아보러 갔다. 그러고는 한참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이것저것 문의를 한다. …그렇게 1시간 반이 순삭. 아…. 왜 이렇게 오래 걸려어어어어어.

$700불을 다 할인받으려면 일단 내 요금제를 한 단계 위로 바꿔야 됐다. 마이 버라이즌 앱에서 알람이 울려 확인해 보니 난데없이 2개 회선의 요금제가 바뀌었단다? 아니 왜? 알고 보니 남편과 내 요금제를 둘 다 바꾼 거였다. (나는 남편과 사촌동생 2, 사촌동생 남편, 남편의 동생 이렇게 총 6명이 가족 요금제로 묶여 있다. 그래. 헷갈릴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아니 왜 이미 한 단계 위 남편의 요금제를 바꾸는 건가요?ㄷ ㄷ ㄷ ) 남편 요금제를 원상복구 한다고는 했는데 남편이 가입했을 당시와 요새 제공하는 혜택이 다르다. 바로 취소했으니 괜찮을 수도 있지만, 일단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보험. 애플케어 말고 일시불로 내는 올스테이트 보험이 2년 보장 기간 기준으로 더 저렴해서 그걸로 한다고 했는데 뭔가 잘 안 되는 눈치였다.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계속 여기저기 통화를 한다. 그러고는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하고 오라고 한다. 음… 아직 폰이 없는데 보험부터 판다고? 뭔가 좀 이상했지만 알았다고 하고 다녀왔다. 배송은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이메일 주소를 남기고 돌아왔다. 새 폰을 샀는데 그닥 기쁘지 않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는 오늘. 그냥 혹시나 하고 마이 버라이즌 앱을 확인해 보니 이미 18일에 도착했다고 한다. …헉. 메일 안 왔었는데? 일단 코스트코로 간다. 오늘 전화를 반납 안해도 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일단 백업은 다 해놨다. 코스트코에 도착. 물론 많은 사람들을 보긴 하겠지만, 그리고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더 알아보긴 힘들겠지만, 대충 설명하는데도 나를 알아보는 눈치가 저어어언혀 없다. 여보세요. 영업 그렇게…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그래. 니가 더 잘하겠지.

여튼 폰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아서 왔다. 그랬더니 내 이름을 물어보고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주소를 물어본다. 확인하는 과정이니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하아아안참을 기다린다. 아니 기다릴 일이 뭐가 있지? 그냥 전화를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뿔싸. 그렇게 효율적으로 편리하게 갈 리가 없지. 그래. 1-2년 산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나이브했어.

종이에 3가지를 프린트해주고는 물건 픽업하는 곳에서 핸드폰을 받아서 돌아오라고 한다. 픽업하는 곳에 도착하니 옆에 돈을 냈다는 증빙이 뭔가 찍혀 있는 게 있어야 하는데 없다고 한참을 물어본다. 코스트코 멤버십 카드를 몇 번 스캔하더니 고개만 갸우뚱. 아무리 지난 주에 보험은 따로 구매했고 기기 자체는 버라이즌에서 요금제와 같이 내는 거라고 설명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마이 버라이즌 앱에 나온 주문번호를 불러준다고 해도 계속 고개만 갸우뚱대다가 급기야 매니저를 부른다. 점원이 매니저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걸 가로채서 다시 설명을 하니 매니저가 “그거 스페셜 오더구나!” 이러면서 점원을 상대로 눈을 흘깃거리고는 내 성과 기종을 물어보고 창고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받을 수 있겠지…? 싶었지만 노노. 기대는 금물. 내 이름으로 주문된 게 없단다. 아아아악. 앗 혹시? 그러면서 사촌동생 남편 이름을 대니 그제야 받았다. 아이폰 기기값은 버라이즌에서 내지만 세금은 내야 한다고 하더니 200불이 넘게 결제한다. 아니 왜요? 세금이 94불 좀 넘는다며? 여기 보험도 있잖아. 보험은 지난 주에 돈 냈다니까? 오늘 보험료 영수증은 안 가져왔지만, 멤버십 카드로 내역 조회해보면 나올 거 아냐. 그때 픽업할 때는 본인이 신분증이랑 멤버십 카드만 가지고 오면 된다고 했다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통신사 부스로 돌아간다. 또. 기.다.린.다. 이번에는 전화기를 개통해야 된다고 (개통한 게 맞긴 한가…) 다 됐단다. 보험 등록했냐고 물어본다. 아니 내가 기기를 아직 못 받았는데 어떻게 등록을 하니… 아 그렇네? 보험 등록하는 거 잊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기기 반납은 여기로 돌아와서 하면 돼? 아니. 버라이즌에 배송 보내야 돼. 그건 너 책임이야. 읭??? 그러면서 서류에 한참 서명 대신 이니셜을 쓰게 한다. 그럼 그렇지. 아. 그래서 버라이즌 점포에서만 하는 행사라고 한 거구나. 아… 그렇구나. …… 뭔가 낚인 기분.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하게 애플맵이 연결이 안 된다. 네비게이션 어쩔… 아무리 시리를 불러보아도 인터넷이 안 연결돼 있다고 한다. 왜…? 아… 설마.. 포장도 뜯지 않은 새 기기를 이렇게 개통하면서 옛 기기 인터넷이 끊긴 거니? 그래서 안 터지는 거니? 다행히 구글맵 오프라인으로 돌아오는데 이미 나는 뭔가 너덜너덜해진 기분.

4시간에 걸쳐 새폰으로 정보를 이전한다. 오래 걸리는 대신 영혼까지 복사되는 느낌이지만 역시 은행 앱들은 로그아웃 되어 있다. (아… 근데 그건 보안상 그래야 할 듯.) 한국 은행들은 공인인증서 때문에 아예 미국 폰엔 받지도 않았다. 그거 때문에 저가폰 개통해서 옛날 기기에 심어 놨지롱 ㅠㅠ (공인인증서도 참… 거시기한데 그건 그냥 다음 기회에)

…아, 맞다. 보험 등록하라고 했지. 보험사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별도의 등록이 필요 없다고 한다. -_-;;; 음… 근데 왜 커버되는 기기에 그날 산 충전하는 플러그만 떠 있지? 보장 내역은 폰에 관한 내용인데… 그래도 아이폰 모델 넘버나 이런 거 등록해야 되는 거 아닐까?음… 문의 메일을 남겨둔다. 뭔가 찝찝하다. 아… 버라이즌 기기 반납은 또 언제 하나. …뭔가 이상하게 속은 기분이 든다.

하긴… 뭔가 속는 기분이 드는 건 한국 통신사도 마찬가지긴 했다. 그래도 이거보다는 훨씬 빠르고 훨씬 덜 번거로웠는데 ㅠㅠ

갑자기 주토피아에서 나무늘보가 DMV차량관리국 직원이었던 게 생각난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느린 일상에서 미국인들도 기함하는 게 바로 DMV다. 그래… 오늘 거기 안 다녀온 게 어디야. 마음을 다스리고 이제 즐겨보자 아이폰. 그런데 왜 이렇게 계속 빨간 알람은 안 지워지는 걸까요…? 아. 너덜너덜. 그래도 여행 가기 전에 새 폰을 받았다. 괜찮아요 괜찮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힘차게 좋아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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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하루

띠링. 오늘 아침 축하한다고 알람이 뜬다. 뭐지? 지난 주 액티비티 챌린지에 성공했단다.

지난 주 하루 빼고 모두 5000보를 넘게 걸었더라. (만 보는 아직 무리인 것 같아 그냥 하루 5000보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토요일은 만 천 보를 넘겼고, 일요일도 만 보 가까이 걸었다. 그 결과, 오늘 다리가 뻐근한 건 물론, 생리통으로 골반도 뻐근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안 그래도 떨어진 체력을 불살랐는데 생리까지 시작했으니…

오늘은 과감히 쉬.자. 모드로 들어갔다. 할까 말까 읽을까 말까 들을까 말까 고민했던 것들을 모조리 하지 않았다. 그렇다곤 해도 시아 드랍과 픽업, 새벽 설거지, 아침과 점심 차리기, (저녁은 시아랑 같이 사온 냉면을 남편이 끓였다), 시아랑 저녁 메뉴 협상 끝에 함께 장보기, 빨래 돌리기 등은 기본(?)은 했다. 그나마 지난 주 거의 다 빠졌던 ‘낭독’만 겨우 시아 방에서 누워서 참여했다.

이랬던 오늘의 기분은 정말 딱 Pink Martini의 Sympathique

오래 전에 트롬 세탁기였는지 광고에 나와서 히트했던 노래. 불어로 선언하는 가사 “Je ne veux pas travailler!(나 일하고 싶지 않아!)”에 꽂혔던 게 기억난다. 그때부터 Pink Martini의 노래를 좋아했는데 LA Hollywood Bowl에서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들었다. 그때의 감동이란. 그때 와인과 도시락 거리를 함께 싸가서 공연을 감상했던 우석 미연은 이나와 한국에, 우리는 시아와 산호세에 있다니. ㅎㅎ

그러고 보니 미국에 오고 나서 갔던 유일한 공연/축제구나. 흑. 아. 유일…은 아니네. 뉴욕 갔을 때 알라딘 뮤지컬 봤었고 라스베가스에서 카쇼, 오쇼 봤었구나.

1시 반 좀 넘어 자서 7시 반에 일어났다가 10시 반에 다시 1시간 반 자고, 점심 먹고 또 누워 있다가 시아 데려오고 나서 기진맥진해서 저녁 먹고 8시쯤 다시 누워 있다 잠들어서 11시에 일어났으니 총 10시간 반 잤는데도 졸립다. 그래도 블로그 글은 쓴다고 억지로 몸뚱이를 일으켜 자판을 두드린다.

…적지도 못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던 할 일 목록이 자꾸 떠오른다.

– 시아 생일카드 써야 되는데… 그러고 보니 막상 우리는 아직도 시아 선물을 안 줬군. 내일 카드 써서 함께 줘야지.

– 동부 여행 준비 얼른 해야지. 딴 건 몰라도 숙소는 예약해야 하지 않겠나요?

– 뭔가 또 빼먹은 게 있는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원망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룬다. 다시 자야지. 내일은 조금 더 상쾌한 하루이기를.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