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이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 사람의 ‘능력’ 입니다. 학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여성의 불면증 유병률이 남성의 1.5배라고 봅니다. 그만큼 여성이 남성보다 휴식을 취하기 어렵고,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원래 애는 엄마 갈아넣어 키운다? 여성의 불면, 수면 위로 올릴 때”에서 본 문장이었다. 수면조차 ‘능력’으로 치환하는 문장이 서글프다가도, 실제로 삶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싶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꿈도 많이 꾸고 잠귀도 예민하다. 깊이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수면 시간이 담보되어야만 한다.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새벽 1시 전에 자기인데 여태 한 두어 번 정도 지켰으려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있기에 아마 당분간은 계속 지키기 힘들 것 같다. 늦게 자서인지 이런저런 시름이 많아서인지 요새는 더 잠을 잘 자기 힘들다.
“”육아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행위에요. 저만해도 머릿 속에 여러 개의 서랍을 만들어요. 아이에게 뭐가 필요한지, 교체해야 하는 생필품은 없는지, 빨리 해치워야 할 집안일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요. 마치 ‘관리자’처럼요. 잠들기 위해서는 잡념을 멈춰야 하는데, 생각할 거리가 끝없이 생겨나는 거죠.” ‘엄마는 잠을 희생하더라도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사회), 출산 그 자체가 몰고오는 내면의 변화(심리)가 종합적으로 작용해 여성의 밤을 더 길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 개의 서랍으로 내 삶을 나누는 행위는, 축복이자 저주 같다. 그렇게 나누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나뉜 내 조각들이 어느 순간 산산이 흩어질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오랜만에 혼자 와인을 마시고 그나마 일찍 곯아 떨어졌다. 딸이 우리 방으로 넘어와 엎치락뒤치락, 악몽 꾸고 울기, 잠꼬대, (남편과) 이불 갖고 싸우기, 몸에 엉겨붙기, 팔 베고 자기 등으로 특별히 더 잠을 설쳤다. 그래서 오늘은 딸을 보내고 열 일 제쳐두고 잠시 명상을 하다(라고 하기엔 틀어놓고 스르르) 아침잠을 잤다. 남편은 일하고 아이는 학교에 가 있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의 꿀잠 시간…
길고 어두운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건, 그런 사소한 달콤한 순간들이다. 그런 달콤함을 모은 서랍에 기대 하루를 버틴다. 다음 네이버를 오가며 웹툰을 보며 킬킬댄다든가 벌써 세 번째로 해리포터 오디오북을 듣는다든가. 오래 전 보다 만 모던패밀리를 보며 설거지를 한다든가. (이모티콘도 살까 싶었는데 알게 모르게 승인 거부 받은 앙금이 남았는지(?) 아님 이제 정말 한계치인지 이번엔 사지 않았다.)
됐고… 오늘은 좀 일찍 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