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가 끝말잇기에 꽂혔다.
바로 어제, 남편과 시아랑 아침 학교 가는 길에도 끝말잇기를 했다.
‘추억’이라고 말을 하길래, 추억? 이렇게 되물었더니, 바로 대답한다. ”어,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하는 걸 추억이라고 하는 거야.” 정도의 말이었다. 바로 어제 일인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의 깜짝 놀랐던 그 느낌만이 남아있다.
오늘은 남편이 아침 일찍 회사에 가야 해서 하교길에 걸었다. 그냥 잘 넘어갈 것만 같던 감기 기운이 다시 좀 오는 것 같아 열 일 제치고 누워 있다가 나가려니 너무 가기 싫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까, 하기 싫은 거라도 함께 계획하고 약속한 걸 지키는 모습을 시아에게 보여줘야 될 것 같아 꾸역꾸역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오고 나서부터 몽글몽글 예쁘던 구름이 오늘도 어김없이 반겨주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안 좋아졌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시아는 데리러 가야 되니까. (내가 안 가면 아무도 안 가니까…?)
돌아오는 길, 햇볕 때문인지, 학교를 마치고 지쳐서인지 시아는 길목에 있는 벤치와 돌담에 계속 앉았다. 3번째 휴식 시간이 끝난 후, 벤치에서 일어나며 우리 이제 힘내서 얼른 집에 가서 간식 먹자고 했다. 시아는 곰곰 생각하더니 다시 끝말잇기를 하며 걷자고 했다.
무슨 단어들이 나왔더라…? 기후, 후추가 기억나고, 내가 고민,이라고 하니 ‘민하 언니!’라고 해맑게 외치던 것만 생각이 나네. 민하 다음에 하에는 뭐라고 했더라?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단어인데, 오늘도 역시 시아가 알까 싶었던 단어를 말했다. 그게 뭔지 물어봤더니 제법 그럴듯하게 설명했다. 설명하는 시아가 대단하기도 하고, 같이 걸으며 끝말잇기를 하는 그 찰나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애플워치 녹음기를 틀고 다시 한 번만 말해달라고 했다.
“…한 번만 알려달라며! 왜 또 물어보는 거야?!”
“아니. 시아야. 한 번만 더 말해주면 안 돼? 엄마도 너 뭐 물어보면 다시 말해주잖아.”
“아니. 한 번만이라고 했고 한 번 말해줬잖아!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래. 알았어. 그럼 가자.”
우리 이버럭양. 세상 다정하다가도 저렇게 급발진하는 시아를 보면… 생각도, 고민도 많아진다.
…그래. 잊지 말자. 저 아이는 5살.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하려면 멀었다. 씁씁후후. 단어는 많이 알지만 감정 조절은 아직 한참 남았다고 했었지. …그래도 자기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채는 게 어디냐. 짜증나게 물어본 말 또 물어보지 말자. …
조금 더 걷다가 또 앉는다. 안 그래도 음료수를 많이 마신다 싶었더니 갑자기 화장실에 가야 된다고 울상이다. 집 근처 웬디스에 들어간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뭐라도 사고 나야 될 것 같아 메뉴를 한참 보다가 진열돼 있는 쿠키 중 하나를 고르라고 시아에게 말했다. 쿠키 하나 달라고 하니까, “Just this? 이것만 드려요?”라고 하더니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 힘들었던 마음에 당도가 차오른다.
집에 가서 쿠키 먹자고 덕분에 둘이 힘내서 신나게 돌아왔다. …로 끝이 나면 참 훈훈할 텐데, 동화에서는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만,’ 삶은, 그러니까 현생은, 끝이 없다.
내 손바닥보다 더 큰 쿠키를 혼자 먹겠다고 한다. 미국 과자는 워낙 달다. 저 큰 걸 다 먹어도 되는지 걱정도 되고, 맛도 궁금해서 엄마 조금만 먹어보자고 했다. 내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더 작게 쿠키 끝을 조금 떼어 먹었다.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No!!!!!!!” 엄마가 자기 말을 안 들었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알고 보니 나한테 안 된다고 말로 한 건 아니고 고개를 흔들었다고 한다. 물론 본인의 의사 표시를 뚜렷이 했는데 내가 그걸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 좋을대로 해버린 건 잘못이니 일단 미안하다고 수긍했다. 누가 보면 엄마 잃어버린 것 아닐까 싶게 서럽게 울어대는 시아를 일단 안아준다.
자기가 열심히 동그랗게 갉아 먹고 있는 건데(I was working so hard!!)엄마가 자기를 ‘존중respect’하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른다. (정말 그노무 존중… 노이로제 걸릴 거 같지만… 자기가 당연히 존중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걸 기쁘게 받아들이기로….생각은 해 본다.)
니가 모양을 만들면서 먹고 있던 건 몰랐다, 미안하다. 조금 더 작게 원을 만들면 안 되냐,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요만큼도 나눠 먹지 못한다고 한다니 속상하다, 고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울며불며 씩씩대더니 급기야 나를 할퀴고 때린다. 욱,하고 뭔가 올라오지만 참을인 자 대신 쟨 다섯살, 난 마흔 한살, 쟨 다섯 살, 난 마흔 한 살을 주문처럼 왼다.
조금 진정된 시아에게 다시 이야기를 한다. 네가 존중받고 싶으면 남도 존중해야 한다고. 화가 날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지만,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고. 폭력을 쓰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라고. 지금 네가 한 것처럼 엄마도 너가 말을 안 듣는다고 너를 때리면 좋겠냐고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시아도 힘이 세지만, 엄마가 너보다 힘이 더 센 건 알지? 라며 살짝 으름장도 놓았다. 엄마도 화가 나지만 참고 시아랑 대화를 하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또 아름답게 마무리가 잘 되면 좋겠지만, 시아는 별로 수긍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겠나요. 반복반복반복. 물론 저렇게 성숙하고 아름답게(?)만 반응하는 건 아니다. 소리도 꽥꽥. 시아가 세 살 되기 전까지 소리를 한 번도 안 질렀다고 자랑했는데 그 2년 후 하루에 세 번 안 지르면 다행…. 휴.
그랬다고 합니다. 목이 또 아파온다. 이렇게 잘 넘기는 줄 알았는데… 콧물이 시작되는 게 느껴진다. 약 먹고 얼른 자야겠다. 내일도 아침에 걸어야 되니까.